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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11을 지켜낸 남자 페터 슈츠, 세상을 떠나다

포르쉐 911은 뭇 남성들의 로망이다. 전통과 혁신을 동시에 담아낸 디자인, 고집스런 수평대향 6기통 리어 엔진, 쾌적하면서도 짜릿한 주행성능까지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점이 911의 매력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911을 동경하며 살아간다.

그런데 세계적인 인기 모델 911이 한때 사라질 위기에 처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오일쇼크와 신모델의 판매 부진 등 여러 악재를 겪은 포르쉐는 1980년대 창립 이래 최악의 경영 위기를 맞이했다. 대표작이었던 911의 단종까지 고려되던 당시, 911을 지켜낸 사람이 바로 포르쉐 전 CEO인 페터 슈츠다.

페터 슈츠는 1930년 독일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히틀러의 유태인 박해를 피해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고,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한 뒤 중장비 회사인 캐터필러, 디젤 엔진 제조사인 커민스 등을 거쳤다. 1978년 독일로 돌아온 그는 포르쉐 자동차 창업자 페리 포르쉐의 요청으로 1981년 포르쉐의 CEO가 된다.

당시 여러 스포츠카 제조사처럼 포르쉐 역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페터 슈츠의 기록에 따르면 그가 취임했을 당시 포르쉐 직원들의 사기는 땅에 떨어졌고, 포르쉐 경영진은 911을 단종시키자고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경영진에게 911은 그저 오래되고 운전하기 까다로운 데다 비싼 스포츠카에 불과했다.

하지만 슈츠는 강렬한 캐릭터를 지닌 911이 단종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는 911 단종 계획을 철회시키고 신형 911 개발을 주문했다. 포르쉐의 상징인 911이 계속 생산되자 직원들도 무기력감에서 벗어났고, 포르쉐 공장에는 다시 활기가 돌았다. 1981년 2만 8,000대에 불과했던 포르쉐의 판매량은 4년 만에 4만 9,000대로 뛰어올랐다.

뿐만 아니라 슈츠는 포르쉐의 모터스포츠 활약상에도 기여했다. 그는 과거 활약했던 936 바디에 신형 엔진을 얹어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부진을 떨쳐냈다. 1981년 우승 이후 신형 레이스카를 속속 투입, 1987년까지 연승행진을 기록했다.

그의 또다른 업적은 전설적인 슈퍼카, 959의 개발이다. 그는 향후 911에 투입할 신기술 연구를 위해 당대 최강의 슈퍼카 개발을 지시했다. 카레라 GT, 918 스파이더 등 포르쉐 하이퍼카의 원형이 된 959에는 트윈터보 엔진과 구동력 배분이 가능한 4륜구동 시스템, 가변식 댐퍼 등 다양한 첨단 기능이 탑재됐다.

그러나 959의 명성과 별개로, 959 개발은 포르쉐를 다시 한 번 경영난에 빠뜨리는 계기가 됐다. 959 개발과 생산에 투입된 천문학적인 비용 탓에 포르쉐의 자금 융통이 나빠졌고, 설상가상으로 달러 환율 약세로 심각한 손해를 본 것. 결국 그는 1987년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던 그는 지난 10월 향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비록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포르쉐의 상징과도 같은 911을 지켜내고, 모터스포츠와 슈퍼카 개발에도 아낌없이 투자했던 그의 열정은 오늘날 포르쉐가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브랜드로 인정받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